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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하이킹

(27,040km 히치하이킹한 이야기, 한국) - 1. 출발

 

 

2009년 프랑스에서 워크캠프에 참여하였다. 3주 동안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지내면서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에 개구리들을 만났다. 세상에는 다양한 우물이 있었고 다양한 개구리들이 있었다.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일주를 결심했다.

2010년 상반기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다. 여행을 갔다 온 후에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졸업할 생각이었다. 졸업 후에 여행을 갈 수도 있었지만 학생 신분이라는 보험이 필요했던 것 같다. 휴학생이 하는 여행과 졸업한 백수가 하는 여행은 느낌이 다르니까. 그나저나 여행을 갔다 와서 졸업을 하고 나서 무엇을 할 것인가? 미래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경제학과였던 나는 은행이나 증권사에 취직하고 싶었다. 반년 정도 공부해서 CFA LV.1을 땄다.

지금 생각해보면 졸업을 하지 않고 여행을 떠난 것, 취업준비랍시고 CFA LV.1을 딴 것, 둘 다 멍청한 선택이었다. 특히 CFA LV.1.....CFA는 미국재무분석사 시험인데 응시료가 100만 원이 넘는다. 이 돈을 여행에 썼으면 2달은 더 여행할 수 있었을 텐데.... 아.... XX XX 아깝다.

CFA 시험을 보고 나니 2010년 12월 되었다. 세계일주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4학년 1학기 때 교환학생으로 동유럽의 '리투아니아'라는 나라에 있었다. 학교에 안 가는 날에는 한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통역 알바를 했었는데 그때 사장님(특히 사모님)이 나를 좋게 봐주셨다. 학기가 끝난 후에 한국 가지 말고 거기서 일하라는 제안도 하셨었는데 계속 있다 보면 그곳에 묶일 것 같아서 거절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혹시나 해서 연락을 드렸다. 거기서 일할 수 있느냐고. 마침 한국에서 리투아니아에 사업하러 들어오는 기업이 있었고 그쪽에서 사람이 필요하니 오라신다. 월 200에 숙식 제공. 괜찮은 조건이었다.

2010년 12월 말, 리투아니아로 넘어가서 일을 시작했다. 그다음 해 여름까지 일을 했다. 근데 돈을 모으지 못했다. 내가  일했던 회사가 사기를 당해서 망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3달치 월급을 받지 못했다. 월급을 못 받으면서도 일은 계속했다. 나중에 챙겨준다고 했기 때문에. 하지만 나중이란 건 없었다. 600만 원이 사라졌다. 돈도 얼마 없는 주제에 일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북극(Svalbard) 그리고 몇 개 나라를 더 여행했다. 마지막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탔다. 얼마 없던 돈이 더 없어졌다.

원래 계획은 1,000만 원 정도를 모아서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중에는 150만 원이 있었다. (친구에게 빌려주고 받을 돈 70만 원도 있었으니까 실질적으로는 220 정도.) 계획을 바꾸어야 했다. 다시 일을 해서 돈을 모으고 출발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휴학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돈을 벌면 여행기간이 짧아지게 된다. 최대한 빨리 출발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돈을 적게 쓰면서 여행할 수 있을까. 히치하이킹이 떠올랐다. 이동은 히치하이킹으로 하고 잠은 텐트에서 자거나 노숙, 도시에서는 카우치서핑을 쓰면 돈을 아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국으로 넘어가는 배표를 사고 몇 가지 여행 물품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2011년 12월 12일.

 

아침에 인천공항에 가서 세계일주 떠나는 친구를 배웅했다. 집에 돌아오니 점심시간. 아직 가방도 안 쌌다.

무엇을 쌌는지 기록은 남기고 싶어서 모든 물건들을 바닥에 뿌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쓰던 핸드폰. 쓸모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집에 모셔뒀다.

 

2011년은 아이폰4와 갤럭시 S2가 나온 해였다. 당시에도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나는 해외에 있는 시간이 길었기에 할부금 내는 게 아까워서 스마트폰을 사지 않았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할 일. 스마트폰 사기.

 

히치하이킹은 안전한 방법이 아니다. 여행 중에 불상사가 생겨서 죽을 수도 있다. 원래 겁대가리가 없는 성격이라 걱정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가 있었던 곳에 대해 기억하고 싶어서 방 사진을 찍었다.

 

이 세계지도를 보며 세계일주의 꿈을 키워왔다.

 

사진 여러 장 찍었지만 정작 여행 도중에 한 번도 안 봤다.

 

잘 있어라 우리 집.

 

수원에서 1호선을 타고 구로역에 갔다. 인천 가는 열차로 갈아타고 동인천역 도착.

 

동인천역에서 버스를 타고 항구에 도착했다.

 

예약해놓은 표를 받고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중국인이다.

 

중국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중국에 온 기분. 여행은 이미 시작됐다.

 

시간이 남아서 항구 앞에 있던 이마트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미희에게 줄 나가사끼 짬뽕과 기스면을 샀다.

미희는 해피무브(현대기아차 봉사활동)에서 알게 된 동생인데 중국 여행 출발지인 위해(Weihai)에서 살고 있었다.

가서 며칠 신세 지면서 중국 맛 좀 보고 출발할 생각이었다. 빈손으로 가기 그래서 뭘 사다 줄까 했더니 나가사끼 짬뽕을 사달란다. 당시 꼬꼬면, 나가사끼 짬뽕 같은 흰 국물 라면이 유행이었다. 나가사끼 짬뽕만 살까 하다가 양이 좀 적은 것 같아서 신제품으로 나온 기스면도 샀다. 쥬시쿨은 내가 배에서 먹을 거.

 

승선 시작.

 

침대 한쪽 구석에 가방을 쑤셔놓고 누웠다. 만감이 교차한다. 기쁨, 기대, 설렘, 걱정, 두려움. 별별 이상한 생각도 났다.

 

어쨌든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계일주. 드디어 출발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ZZZzzzzzzzz 금세 꿈나라로 갔다.

(공항 가느라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났다......)